상세정보
고조선, 사라진 역사

고조선, 사라진 역사

저자
성삼제
출판사
동아일보사
출판일
2015-03-06
등록일
2017-02-02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0
공급사
북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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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 역사 연구에서 가장 시급한 분야가 고조선이다.

일본의 보수 우익을 대변하는 학자들이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미화하고,

이웃 나라를 경시하는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만들 수 있는 근거 중 하나가

고대사 왜곡에 있으며,

그 뿌리에 고조선 역사의 왜곡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배운 역사를 의심하라

‘명도전은 고대 연나라의 화폐다.’




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 명제는 참일까, 거짓일까. 명도전 출토 지역의 분포가 옛 고조선의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만주사의 기초를 닦았다는 중국 길림대 역사학과의 장보촨(張博泉) 교수는 어떤 연유로 2004년 중국 학회지에 명도전이 고조선 화폐일 가능성이 높다는 논문을 발표했을까?(《고조선 사라진 역사》 6장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가 아닐까’ 148~156쪽)



고조선 역사를 파고들면 들수록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책은 고조선을 둘러싼 논쟁을 9가지 쟁점별로 살펴보았다. 저자는 2001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책반(일본역사교과서왜곡대책반) 실무반장으로 활약하면서, 한국 정부나 국민들의 분노만으로 일본의 ‘위험한 교과서’와 일본 우익단체의 공세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근본적인 대책은 일본이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깨닫는 것이며, 또 다른 대책은 일본에게 왜곡의 빌미를 주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4년 후인 2005년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저자는 지난 5년 동안 업무수첩에 기록해온 ‘일본역사교과서왜곡대책반 비망록’을 열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고조선을 둘러싼 논쟁들이 좀더 다양하고 폭넓게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이 책은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저자의 딸을 위해 썼다. 서문에서 저자는 “내 딸과 그 또래 청소년들이 편견 없이 우리 고조선 역사의 쟁점들을 봐주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나처럼 학창시절 일그러진 고조선 역사를 배운 어른들도 함께 봤으면 한다”는 바람을 적고 있다.





[책의 내용]



교과서가 가르쳐 주지 않는 우리 역사



1장 단군, 신화인가 역사인가

‘고조선이 건국되었다고 한다.’(6차 교육과정 국사 교과서)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고 한다.’(7차 교육과정 국사 교과서).

‘건국되었다’라는 수동태 문장이 ‘건국하였다’로 바뀌었지만 ‘····라고 한다’에서처럼 남의 입의 빌려 건국 사실을 기록한 교과서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22~23쪽)

왜 우리는 고조선 건국을 믿지 못하는가. ‘기원전 2333년 고조선이 건국되었다’는 국사 교과서의 내용과, 단군의 건국은 신화일 뿐이며 신화를 그대로 믿으면 상식에서 벗어난다고 가르치는 수업시간. 헷갈리는 국사, 누구의 잘못인가?



2장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언제부터인가

한반도의 청동기시대 시작 시기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기원전 400년부터 기원전 4000년까지 편차가 매우 크다. 청동기 시대 상한연대가 중요한 이유는, 고조선 건국을 史實로 보느냐 마느냐의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55쪽)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0세기 무렵부터 시작되므로 기원전 2333년 고조선 건국을 史實이 아니라는 주장이 지금까지의 통설이었다. 그러나 최근 발굴되고 있는 한반도의 청동기 유물·유적을 과학적으로 측정한 결과는 전혀 다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의 시작 연도는 기원전 10세기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장 고인돌에 새겨진 역사

전 세계 고인돌의 절반이 한반도에 있다. 국내 학계는 고인돌이 고조선의 유적이며 청동기시대 유적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북한에서 고인돌의 연대 측정을 한 결과, 기원전 4000대 후반부터 기원전 2000년대 전반기까지 성행했던 건축물이라고 발표했다. 유럽에서도 고인돌의 건축 연대는 기원전 2500~2000년 사이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남한 학자들은 이러한 연대 측정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고인돌이 기원전 20세기 이전의 건축물이라면 그보다 앞서 고조선이 존재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70~71쪽)



4장 단군릉과 단군 뼈의 진실

1993년 10월 북한의 단군릉 발굴 발표. 이에 남측 학자들은 “북한이 주체 사상을 앞세워 학자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유골의 연대 측정을 위해 북한이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대신 전자상자성공명법을 사용한 데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단군릉에서 발굴했다는 유골을 50회 측정해서 얻은 5011±267년(상대오차 5.4퍼센트)이라는 연대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조작된 결과인가, 잘못된 실험인가. (91쪽)



5장 고조선은 대동강 유역에 있었나

고조선의 중심지와 강역(영역)에 대해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한다. 대동강 중심설, 요동 중심설, 요서 중심설, 요동지역에서 대동강유역으로 중심지 이동설. 저자는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을 분석해 패수가 오늘날 대동강이나 청천강이 아니며, 왕험성(혹은 왕검성)이 평양성이 될 수 없는 근거를 제시했다.(106~112쪽)



6장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가 아닐까

‘명도전은 전국시대 때 연나라에서 만든 청동제 화폐’라는 통설을 깨는 새로운 주장. 연나라 화폐라고 하는 명도전이 왜 고조선 영토에서 대량 발굴되고 있을까? 반대로 고조선 땅에서는 왜 고조선 화폐가 한 개도 발굴된 적이 없을까? 명도전이 연나라 화폐임이 분명하다면 고조선은 왜 전쟁 상대인 국가의 화폐를 대량 사용했을까? 중국의 학자는 어떤 근거로 명도전이 고조선 화폐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을까?(137쪽) 저자는 원점에서 명도전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7장 일본은 《삼국유사》를 변조했나

《삼국유사》 판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삼국유사》 중종 임신본. 임신본이라 불리는 이 책의 영인본에서 일본이 의도적으로 글자를 고쳤다면? 저자는 일제 강점기 조선사편수회 시절 최남선 선생이 일본 역사학자 이마니시의 소행이라며 울분을 터뜨린 변조설을 파고들었다. 대부분의 《삼국유사》가 고조선 편에서 석유환인昔有桓因(옛날에 환인이 있었다)이라고 표기하나, 변조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석유환국昔有桓國(옛날에 환국이 있었다)이 올바른 표기라고 말한다. 《삼국유사》임신본 변조설의 전모. 누가, 언제, 왜 고쳤을까?(168~169쪽. 글자 위에 덧칠한 흔적이 역력한 《삼국유사》영인본 사진).



8장 위서 논쟁 속에 묻혀버린 고조선

《규원사화》와 같은 책들이 영광스러운 고대사를 만들기 위해 조작했다는 식으로 단정 지을 게 아니라, 먼저 성경의 위서 판정 연구기법을 도입해서 위서 논란이 있는 사서들에 대해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감정부터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9장 《환단고기》에 기록된 천문현상

위서로 분류되는 《환단고기》에 그 어떤 역사기록에도 나오지 않는 새로운 사실이 적시돼 있다면? 1923년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의 묘지(죽은 사람의 이름, 관직, 행적 등을 새긴 글)가 발굴되면서 아버지 연개소문(개금), 할아버지 태조, 증조부 자유의 이름이 밝혀졌다. 학자들은 이와 비슷한 내용이 《환단고기》에 실려있기 때문에 이 책은 남생의 묘지가 발굴된 1923년 이후 쓰인 위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환단고기》에는 남생의 묘지에 나오지 않는 새로운 사실이 기록돼 있다. 즉 남생의 고조부이며, 연개소문의 증조부인 ‘광’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이다.(226쪽) 《환단고기》는 남생의 묘지를 베낀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저자는 박창범 전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가 쓴 논문 ‘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 기록의 과학적 검증’이 발표되면서 《환단고기》 재평가 움직임이 있었던 점을 환기시키며 이제 《환단고기》를 포함한 재야사서에 대한 비판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0장 고조선 논쟁은 계속돼야 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조직적인 한국 고대사 왜곡으로 인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고조선 논쟁을 불가피한 측면이 많다. 그럼에도 고구려, 부여, 고조선의 역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이미 시작됐다. 이제 고조선 역사 논쟁은 단지 학설 논쟁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 손으로 조선총독부가 왜곡하고 말살한 역사를 원형 그대로 되돌려야 한다. 한국과 일본이 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구성하여 함께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과 중국에게 역사 왜곡의 빌미를 주지 않는 근본적인 대책으로써 고조선 연구가 계속돼야 할 것이다.(247쪽)





[저자와의 일문일답]



Q1 국사 교과서의 저작권자인 교육인적자원부의 공무원이 우리 역사 관련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1 그것에 답하려면 2001년 일본역사교과서왜곡대책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뿐 아니라, 일본 우익이 우리 국사 교과서를 공격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일본 측에 수정을 요구할 부분을 점검하는 것과 아울러, 방어적 차원에서 우리의 근·현대사, 중세사, 고대사를 쭉 점검하다가 고조선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국사 교과서의 내용이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배운 역사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예를 들어 한사군 문제. 고등학교 시절 한사군의 명칭과 설치 지역을 암기했던 기억이 났다. 4지선다형 문제를 출제하기 좋은 4군의 위치와 설치지역을 연계하는 문제는 초보적인 수준이었고, 심화 단계에서는 낙랑군이 멸망한 서기 313년에 서양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가를 묻는 문제가 나오곤 했다. 서기 313년은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해다. 이 문제는 모의고사나 예비고사에서 출제 빈도가 높아 특히 주의를 기울여 암기했던 부분이다. 이처럼 지금의 40~50대는 고조선을 400년 동안 한나라의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왜소하고 초라한 왕국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내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2005년 국사 교과서에는 ‘고조선이 멸망하자 한은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고 지배했다’고 되어 있다. 고조선의 일부 지역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고조선의 영토는 어디까지였는지 알 수 없는 매우 애매한 표현이다. 20여년 동안 왜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 의문이 생겼고 그것을 하나하나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리 역사, 특히 고대사 부분에서 상당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았다.



대책반 실무반장을 맡을 때는 보고서 하나 만들고 끝날 줄 알았는데 이 일에 점점 빠져들어 결국 나의 개인 비망록은 계속 늘어났고 5년 동안 정리한 내용을 이번에 책으로 펴내게 됐다.



Q2《고조선 사라진 역사》는 학계의 통설에 도전하는 내용이 많다. 그 동안 재야 학계에서 비슷한 주장을 많이 했으나 ‘비과학적이며 과잉된 민족주의’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공무원의 신분으로, 이런 책을 쓴다는 것은 다소 위험한 시도가 아닌가.



A2 대책반 업무를 할 때 한국과 일본 어느 쪽에도 편중되지 말자는 원칙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외국 학자들의 의견까지 가감 없이, 편견 없이 수렴하려고 노력했다. 일본 정부에 수정을 요구하려면 반대로 우리 역사에 대해 제기되는 문제들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고조선 사의 쟁점들을 9가지 정도로 정리하고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의 시각과 대한제국 이후의 시각, 오늘날 국사 교과서 등을 나란히 놓고 비교했다. 공무원들이 잘 하는 것 중 하나가 비교표를 만들어 장단점 또는 차이점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렇게 했더니 내가 1970년대 고교시절에 배운 역사는 총독부가 왜곡해 놓은 것과 거의 달라진 게 없었다. 오늘날의 교과서는 민감한 부분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 애매한 방식으로 기술한 것이 많다. 이 또한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역사 교과서가 논술 교과서도 아닌데 논쟁 자체를 가르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이 책을 통해 고조선 논쟁을 해보고자 했다.



물론 이 책을 내기 전에 공무원이 학자들 논쟁에 끼어드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런데 오늘날 최고의 사료로 꼽히며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은 예문관 소속 관리들이 맡아 적은 것인데 요즘으로 치면 공무원에 해당한다. 대한제국이 이어졌다면 역사실록은 예문관 같은 오늘날 교육부 공무원들이 맡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조선시대 사관과 같은 사명감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



Q3 그러나 역사 논쟁은 학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옳지 않은가. 아마추어의 설익은 논리는 곧바로 반박을 받을 수도 있다.



A3 고조선 역사가 인위적 조작 없이 전해졌다면 이 논쟁은 온전히 학자들의 몫이겠지만,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엄청난 예산을 들여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왜곡했다면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정부 차원에서 왜곡 사실 자체를 밝힌 다음 학술 논쟁을 벌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다지 공정한 논쟁을 벌여왔다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청동기 문명의 전파에 대해 우리는 서방 기원설을 받아들이고 있으나, 1900년대 초만 해도 청동기 문명이 아시아에서 발생해 유럽으로 전파됐다는 학설이 유력했다. 당시 유럽의 여러 학자들이 그런 주장을 했으나 우리 학계에는 제대로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이것은 공정한 논쟁이 아니라고 본다. 영국 유학시절 스톤헨지에 갔을 때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우리나라 고인돌 비슷한 유적이었다. 영국 사람들은 그것을 유적이라고도 보지 않는데, 내 눈에는 분명 고인돌이었다. 그때 저 고인들이 이쪽에서 우리나라로 전해진 걸까,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이쪽으로 전해진 걸까라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실제 한반도의 고인돌이 유럽 쪽으로 전파됐다는 주장을 한 학자가 있음을 알게 됐다. 아쉽게도 학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책에는 이런 이론들을 많이 소개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 책을 계기로 다양한 반론이 나오면서 논쟁이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바다.



Q4 《고조선 사라진 역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이 6장 명도전이다.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가 아닐까라는 의문문으로 시작했지만,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연나라 화폐가 아니라 고조선 화폐라는 주장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데····.



A4 지난 5년간 관련 자료를 1000권 쯤 본 것 같다. 그런데 명도전에 대해 어떤 선입관도 갖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배운 것까지 모두 원점에서 놓고 다시 검토해 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명도전이 고조선 화폐일 수도 있지 않을까? 국사 교과서는 명도전이 연나라 화폐라고 하는데, 희한하게도 연나라 화폐여야 할 근거가 없었다. 반면 명도전의 출토 지역 분포도가 러시아 학자 부찐이 그린 고조선 영역 지도와 절묘하게 일치했다. 고조선 영토에서 발견되는 화폐를 굳이 연나라 화폐라고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의구심을 가지고 명도전을 조사하던 중 중국 만주족 출신 역사학자가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라고 주장한 논문을 발견했다. 2004년에 학술지에 실린 것이니까 최신 연구결과다. 그 분을 찾아가서 어떻게 그런 연구를 하게 됐는지 자세히 알고자했는데 2000년에 작고했다고 해서 안타까웠다. 이런 논문이 국내에도 알려져서 우리 시각에서 다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5 재야학자들의 주장까지도 편견 없이 검토돼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이미 위서로 판정받은 《규원사화》나 《환단고기》까지도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A5 위서논쟁과 관련해 나는 색다른 경험을 갖고 있다. 기독교 신자로서 성경의 위서논쟁을 깊이 있게 공부했고 교회 주일학교에서 이와 관련해 몇 차례 강의를 한 적도 있다. 기독교에서 위서논쟁은 논쟁의 당사자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였지만, 그 과정에서 기독교 교리가 더욱 발전하고 학문적으로도 상당한 진보를 가져왔다. 당장 위경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 문체와 필체 감정기술이 발달하기도 했다. 《규원사화》 《환단고기》를 둘러싼 위서논쟁이 성경의 위서논쟁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책을 위서라고 판정하는 그 자체보다 위서냐 아니냐 논쟁하는 과정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다.



나는 교육부 감사관실에서 민원 업무를 한 적이 있는데, 이때 공무원은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고 공평하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항상 두 가지 관점을 갖는다. 우선 민원인의 주장이 맞다는 쪽에서 모든 증거 자료를 모은다. 다른 하나는 민원인의 주장이 틀리다는 관점에서 주장의 허점을 찾아낸다. 허점이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그 주장은 틀린 것이고, 반대로 민원인의 주장이 수미일관하며 현장조사에서 증거가 나오면 민원은 받아들인다. 이것이 공무원의 민원조사 기법이다.



이 기법을 동원해 위서논쟁을 살펴보았다. 이 책들이 위서라는 시각에서 조사를 하면 할수록 위서가 아니라는 근거가 더 많이 나왔다. 그렇다면 어떤 결론을 내리겠는가? 9장 《환단고기》편에서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의 묘지(墓誌:죽은 사람의 이름, 관직, 행적, 자손의 이름, 생일과 죽은 날, 묘지의 주소 등을 돌에 새긴 글)를 근거로 이 책이 위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폈다. 1923년 발굴된 남생의 묘지에서 증조부 ‘자유’, 할아버지 ‘태조’의 이름이 나왔는데,《환단고기》에는 덧붙여 남생의 고조부 ‘광’의 이름까지 등장한다. 바로 이것이 《환단고기》가 1920년대 발굴된 남생 묘지의 내용을 베꼈으니 위서라고 하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근거다. 남생 묘지를 보고 베낀 게 아니라면 《환단고기》가 참고한 또 다른 사료가 있었을 것이다.

또 남생의 묘지에는 ‘요동군 평양성’이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평양의 요동을 명문으로 한 것은 이 묘지가 최초일 것이다. 남생의 묘지 내용은 일본인 학자가 쓴 《조선금석고》에 나온다. 지금도 의지만 있다면 서울대 도서관에서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어쨌든 일본 학자들은 남생 묘지에 평양 요동이라고 되어 있다는 것을 자기들끼리만 공유하고 비밀에 부쳤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것이 알려지면 일제 강점기 일본학자들이 주장한 고조선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고 그곳에 한사군이 설치됐다는 학설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Q6 《삼국유사》중종 임신본의 변조 논란으로 넘어가져 현재 출간되는 대부분의 《삼국유사》가 석유환인昔有桓因(옛날에 환인이 있었다)이라는 표기를 따르고 있다. 이미 오래 전에 석유환국昔有桓國(옛날에 환국이 있었다)은 오기로 판명된 것 아닌가?



A6 그 문제에 관해서는 답답함을 느낀다. 변조했다는 주장을 하면 재야에서나 하는 소리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일단 고려대와 서울대에 보관돼 있는 《삼국유사》 중종 임신본을 본 다음 논쟁을 해주기 바란다. 독자들이 눈으로 보고 판단하라는 뜻에서 덧칠된 《삼국유사》영인본 자료를 넣었다.



나는 일본이 강점기에 유독 한국에만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했다는 사실을 알고 의아했다. 역사 왜곡이 식민 통치의 한 방법이라면 대만사편수회도 있어야 하고 만주사편수회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영국이 오랫동안 인도를 점령했지만 계획적으로 역사왜곡을 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그렇다면 왜 조선총독부는 그렇게 많은 돈과 인력을 동원해 조선사에 손을 댔을까? 그것은 궁극적으로 임나일본부를 합리화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강점기에 글자 몇 줄 변조한 게 아니라, 우리나라 고대사에 대한 관심 자체를 말살해버렸다. 그것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라고 본다.



Q7 이 책은 정답을 가르쳐주기보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보인다. 즉 일방적인 목소리만 내지 말고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합리적으로 재검토 해보자는 식이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아는데····.



A7 앞서도 말했듯이 《삼국유사》 중종 임신본의 변조 논쟁은 일단 문화재청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실물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또 한반도 청동기 문명의 중요 유적으로 꼽히는 고인돌은 문화재청이 주관이 되어 실태파악부터 하고 더 이상 훼손되지 않게 보호하는 일이 시급하다. 위서라고 불리는 책들은 전문 감정 기법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이 책들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가필되고 윤색됐다면 어느 대목이 그러한지 밝혀내는 것도 전문가들의 몫이다.



고조선 영역과 중심지처럼 여러 가지 학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경우, 독일과 폴란드 정부가 마련한 ‘역사 교과서 편찬을 위한 권고안’을 참고로 할 것을 제시했다. 독일과 폴란드 역사학자들이 공동으로 역사 교과서를 연구해서 고대 독일과 폴란드의 역사를 기술할 때는 여러 가지 가설을 여과 없이 소개하도록 양국 정부와 교과서 관계자들에게 권고한 바 있다.(126쪽)



Q8 동북아역사재단의 출범을 앞둔 가운데 《고조선 사라진 역사》의 발간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A8 이 책을 출간하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덧붙인 원고가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해야 할 연구사업의 첫머리에 고조선과 동북아시아 청동기 문명 연구가 자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일본과 중국에게 역사 왜곡의 빌미를 주지 않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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