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소개
1900∼1943. 소설가·언론인.
본관은 연주(延州). 호는 빙허(憑虛). 대구 출생. 가계는 한말에 득세한 개화파 집안으로서, 대구 우체국장이었던 경운(炅運)의 4남이다.
1915년 이순득(李順得)과 혼인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세이조중학(成城中學) 4학년을 중퇴하고 상해로 건너가 후장대학(?江大學)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귀국하여 한말 주일공사관 참서관(參書官)을 지낸 당숙 보운(普運)에게 입양되었다.
1920년 ≪개벽 開闢≫에 〈희생화 犧牲花〉를 발표함으로써 문필 활동을 시작하여 〈빈처 貧妻〉(1921)로 문명을 얻었다. 1921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함으로써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홍사용(洪思容)·이상화(李相和)·나도향(羅稻香)·박종화(朴鍾和) 등과 함께 ≪백조(白潮≫ 창간동인으로 참여하여 1920년대 신문학운동에 본격적으로 가담하였다.
1922년에는 동명사(東明社)에 입사, 1925년 그 후신인 ≪시대일보≫가 폐간되자 동아일보사로 옮겼다. 1932년 상해에서 활약하던 공산주의자인 셋째 형 정건(鼎健)의 체포와 죽음으로 깊은 충격을 받았는데, 그 자신도 1936년 동아일보사 사회부장 당시 일장기말살사건으로 인하여 구속되었다.
1937년 동아일보사를 사직하고 소설 창작에 전념하였으며, 빈궁 속에서도 친일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지내다가 1943년 장결핵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