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사랑하고 잔소리하고 청탁하고 거짓말하고… 그들도 우리처럼 살았습니다!
배우자, 형제, 자식, 연인과 주고받은 조선의 진짜배기 생활상이 담긴 편지들을
21세기 역사덕후 청년의 감성으로 유쾌하게, 잊을 수 없을 만큼 신선하게 해석하다!
개인 간에 주고받는 편지는 매우 사적이다. 일기에 견줄 수는 없겠으나 편지에는 종종 내밀한 고백이 담긴다. 쓰고 읽는 사람 사이에 형성된 밀도 높은 친밀감과 신뢰가 기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매력 덕분에 우리는 동서고금의 아름다운 편지들을 읽는 호사도 누렸다. 천재화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인도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인도 초대 총리 네루가 딸에게 보낸 옥중 편지, 방황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보낸 장미의 시인 릴케가 쓴 편지, 20년 20일 영어의 몸을 살았던 신영복 선생이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이 책에도 등장하는 퇴계 이황이 손자 안도에게 보낸 편지 들이다. 다정하고 절절하며 때로 슬픈 편지글은 그것이 유명인의 것이든 이름 없이 스러진 필부의 글이든 늘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편지에서 발견하는 보편성 덕분이기도 하다. “너도 그랬구나, 나도 그랬다.” 같은 정서라고 할까?
이 책을 쓴 저자 역시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옛사람들이 남긴 글귀들 가운데에서 저는 항상 편지글을 유심히 읽었습니다. 특히 아주 시시콜콜하고 개인적이며 사람 살아가는 풍경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글을 볼 때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빗대, 과거를 이미 살다 간 사람들의 모습까지 눈앞에 생생히 펼쳐졌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사랑하고, 살아가고, 힘겨워하고, 기뻐하고, 외로워하고, 아파하다가, 결국 떠난 이야기가 선명하게 그려진 편지들이 항상 궁금했습니다.” 그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시대의 편지들을 찾아 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여러 연구자와 연구기관의 노력으로 공개된 편지가 제법 많았는데, 그것들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다른 누군가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취미 삼아 옛 글을 해석하며 나름의 감상을 적기 시작’했다가 ‘혼자 보기 아깝다’를 거쳐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바람 아래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쳐 소박한 모습으로 서게 된’, 그야말로 ‘덕질’의 결과물인 셈이다.
이 책은 덕후의 미덕으로 가득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뻔한 해설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역사책에서 한두 줄로 설명되는 백성의 삶을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짐작하게 해주며, 한국사 교과서 주요 등장인물인 조선 선비들의 숨겨진 면을 저격한다는 점 등이 특히 그렇다. 잘난 아버지 뒷바라지에 멘붕을 면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야망이 없다’ ‘미래 계획이 없다’라고 돌직구를 날리는 퇴계 이황, 기러기부부로 살지만 바람 같은 건 모른다며 은근슬쩍 아내를 도발하는 남편에게 ‘솔직히 나이 60에 홀아비 노릇 하면 당신 건강에 득이 되는 거지 나한텐 1도 이로울 게 없네요’라고 당차게 응수하는 아내, 경로사상 따위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냈는지 권신 심환지에게 ‘이런 생각 없는 늙은이를 봤나’라고 핵폭탄을 날린 정조, 부부 사기단으로 활약한 집안 노비에게 당한 후 울며불며 편지를 보낸 선비의 아내…. 팩트인지 소설인지 헷갈릴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이 자랑하는 가장 큰 특장이다.
저자는 앞으로도 이러한 ‘덕질’을 이어가면서 조선 선비들이 개인 일기에 깨알 같이 담아놓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나아가 실록에 기록된 상소문을 마구 분해하여 그들의 논리 다툼을 맛보고 즐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밝혔다. 그와 함께 ‘시시콜콜한 역사 산책’을 즐길 날을 기대해본다. 역사책을 즐겨 읽는 독자는 물론 역사라면 고개부터 흔드는 학생들, 그리고 역사를 소재로 소설을 구상하는 많은 작가들에게 이 책은 멋진 독서의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편지’라면 조선도 오늘이 된다!
저자의 설명을 따르면, 조선 사람들이 쓴 편지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남아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개인 문집이나 편지글 모음집, 두 번째는 가문 내에서 대대손손 전해진 편지들을 모은 것,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의 무덤에 함께 묻은 것이 느닷없이 발굴된 것이다. 뒤로 갈수록 일상을 그려볼 수 있는 선명도가 높아지는데 이는 ‘편집자의 필터링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받은 편지를 평생 소중히 간직하다가 죽음 너머에까지 함께한 소장자의 편지는 그 사람의 생애 안팎을 매우 입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런데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의 장점은 이 같은 팩트 체크에 있는 게 아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상상을 뛰어 넘는 독특한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편지를 쓰려면 글을 알아야 하고, 글을 배우는 건 양반들의 몫이고, 그러니 편지 내용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진 일을 다루겠지’ 하는 짐작을 가볍게 배신한다. 최고 권력자인 왕족, 내로라하는 가문의 주역들이 쓴 편지라고 해서 일반 백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더 나아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여기’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일상에 우아하고 심오한 게 어디 있나요?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예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이렇게 읽자
저자는 이 책에 편지들을 소개할 때 ‘전공자가 보기에 선 넘을 만큼’의 윤색과 편집을 가했다고 밝힌다. 어투 혹은 뉘앙스를 바꾸는 것은 물론이요, 지주 인용되는 사자성어나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비유는 생략하거나 때론 과감히 의역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중세 국어 또는 한문 편지는 아무리 잘 번역해도 우리와의 시간만큼이나 거리감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문에 충실하겠다는 일념으로 독자의 시대와 동떨어진 글을 생산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살아 숨 쉬는 글쓰기란 ‘박제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와 오늘 사이에 존재하는 텐션을 고르는 일’이니 말이다. 소개하는 편지마다 원문을 같이 제공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여러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최소한의 정보로 한글편지는 [한], 한문편지는 [漢]으로 표기했음을 밝힌다. 원문이 궁금한 분들은 한글 편지의 경우 한국학자료센터의 〈조선시대 한글 편지〉 페이지(http://archive.aks.ac.kr/letter/letterList.aspx)에서 확인 가능하고, 한문 편지는 책 말미에 정리한 인용 저서를 확인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