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비어스의 작품 세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딕 유령 단편이다. 하버(이 글의 화자)는 어느 여름 동안 친척을 방문했다가 빈 집 한 채를 빌려서 생활한다. 이 집은 매너링이라는 의사가 살았던 곳으로 이 의사는 홀연히 종적을 감춘 뒤 행방이 묘연하다. 매너링은 시한부 환자가 아닌 지극히 건강한 사람의 죽음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매너링의 실물 크기 초상화가 남아있는 이 집에서 하버는 기이한 일을 겪는다.
〈책 속에서〉
“나는 댁들처럼 그러니까 과학자로 불리길 좋아하는 그런 의사들 중 일부처럼 그리 미신적이지는 않아요.”
하버는 아무도 하지 않은 비난에 응수하면서 말했다.
“여러분 중에서 일부분, 솔직히 말해서 극소수만이 영혼의 불멸을 믿고, 댁들이 솔직하지 못해서 유령이라고 부르지 않고 환영이라고 하는 것을 믿지요. 나는 산자가 종종 지금 있는 곳이 아니라 있었던 곳 요컨대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아주 열정적으로 생활함으로써 사방에 그들의 흔적을 남겨놓은 그런 곳에서 목격된다는 확신 그 이상은 말하지 않을 겁니다. 사실 누군가 지냈던 환경이 그 누군가의 개성에 큰 영향을 받아서 오랜 시간 후에 다른 사람의 눈에 그 누군가의 이미지를 보이게 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요. 물론 각인되는 개성은 적절한 개성이어야 해요. 대상을 인식하는 눈이 적절한 시력이어야 하듯이 말이죠. 내가 보기엔, 이를테면 그렇다는 겁니다.”
저자소개
지은이 앰브로스 비어스(Ambrose Gwinnett Bierce)
미국 남북전쟁에 참전한 후 기자와 비평가로 샌프란시스코, 런던, 워싱턴에서 활동했다. 죽음과 공포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한 냉소적인 단편소설을 썼다. 1913년 미국 생활에 싫증을 느껴, 당시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던 멕시코로 갔다가 1914년 1월 11일 멕시코에서 실종됐다. 오지나가 포위 공격 때 살해당했으리라 추정되지만 정확한 사망 경위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19세기 철도 법안을 둘러싼 비리를 파헤쳐 저널리스트로도 명성을 떨쳤으며, 칸 영화제 수상 단편 「아울 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An Occurrence at Owl Creek Bridge」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불안이나 죽음의 공포 등 영혼의 극한적인 상태를 에드거 앨런 포의 전통에 따라 표현해 한때 포와 비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텔레파시 등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괴기 소설을 주로 쓴 탓에 인기에 비해 문학성은 인정받지 못했다. 삼류 괴기물로 평가절하 됐던 비어스의 작품은 1964년 그의 사후 50년 만에 미국의 한 출판사가 괴기 소설전집에 그의 작품을 소개하면서부터 재조명되었다.
옮긴이 정진영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상상에서는 고딕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잿빛의 종말론적 색채를 좋아하나 현실에서는 하루하루 장밋빛 꿈을 꾸면서 살고 있다. 고전 문학 특히 장르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기획과 번역을 통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려고 노력 중이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작가와 작품을 재조명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스티븐 킹의 『그것』, 『러브크래프트 전집』, 『세계 호러 걸작선』, 『뱀파이어 걸작선』, 『펜타메로네』, 『좀비 연대기』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