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산맥
“러브크래프트 서클”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군의 작가와 그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입니다.
『광기의 산맥』은 1931년에 완성했지만, 《위어드 테일스》는 너무 길고 나누어 게재하기도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원고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1936년 《어스타운딩 스토리즈》에 3회에 걸쳐 게재됐습니다.
이 작품은 러브크래프트의 최대 야심작이자,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적』과 『찰스 덱스터 워드의 사례』에 이은 세 번째 장편에 속합니다. 러브크래프트는 어렸을 때부터 남극 탐사에 대한 글을 쓰는 등 남극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고 하죠. 수년 동안 이 작품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어스타운딩 스토리즈》에 작품이 실릴 당시, 원본의 긴 문단이 짧게 나뉘고 문장 부호가 바뀌고 상당분량이 삭제되는 바람에 러브크래프트가 크게 분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러브크래프트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 중에 하나입니다. 남극 탐사와 고대의 괴생명체(올드원)의 비밀을 파고드는 치밀한 묘사는 작가의 문학 세계와 특징을 대변하는 장점인 동시에 러브크래프트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접근하기 힘든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러브크래프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크툴루의 부름」, 「인스머스의 그림자」, 「우주에서 온 색채」 등의 다른 작품을 먼저 읽어보는 것도 『광기의 산맥』을 즐기는 방식이 되겠습니다.
〈책 속에서〉
내가 부득이 발언을 하는 이유는 과학자들이 내막도 모르면서 내 조언을 따르지 않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해 온 이번 남극 탐사―방대한 양의 화석 발굴과 고대 빙산의 대규모 시추 작업 및 용해―에 왜 반대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내 의사에 반하는 것이다. 게다가 경고를 한들 소용이 없을 것이기에 더욱 망설여진다. 이제부터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겠지만,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과장되고 터무니없어 보일 지금의 이야기를 함구해 버린다면, 앞으로 남겨질 것이 없게 된다.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은 일반 사진과 항공 촬영 사진들이 내 말을 뒷받침해 줄 것이다. 그 정도로 사진들은 선명하고 생생하다. 그러나 사진을 위조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 경과됐다는 점이 또 다른 의혹으로 제기될지 모른다. 예술 전문가라면 눈여겨보고 당혹할 만큼 이색적인 기법으로 이루어진 잉크화 몇 점도 있지만, 그 역시 명백한 속임수라며 조롱감이 될 것 같다.
결국 내가 제시하는 자료의 섬뜩함을 가감 없는 사실의 일부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원시적이고 황당무계한 전설 정도로 일축해 버릴지는, 결정권이 있는 선임 과학자 몇 명의 입장과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광기의 산맥 지역을 탐사하겠다는 성급하고도 거창한 계획을 중단시킬 만한 영향력도 그들 과학자에게 있다.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고 그저 이름 없는 대학교에 근무하는 나와 동료들로서는 이처럼 유별나고 논쟁적인 문제에 대해 일말의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으니 불행한 일이다.
엄밀히 따져 볼 때, 우리들 중에 논란이 되는 분야를 전공한 전문가가 없다는 사실도 불리한 부분이다. 내가 지질학자로서 미스캐토닉 대학 탐사단을 이끌었을 때도 공학부의 프랭크 H. 파버디 교수가 고안한 혁신적인 착암기를 동원해 남극 곳곳의 암석과 토양의 심층 표본을 확보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다. 나는 지질학 이외의 분야에서 개척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만 새로운 장비와 기존의 탐사 방법을 다양하게 활용함으로써 지금까지 축적된 방식으로 확보하지 못한 물질을 찾아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우리가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일반인도 잘 알고 있듯이, 파버디 교수의 시추 장비는 대단히 혁신적인 장비로서, 가볍고 휴대가 간편할 뿐 아니라 일반 시추 작업에다 경도가 다른 지층에 따라 신속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합해져 성능이 탁월했다. 강철 헤드와 결합봉, 휘발유 발전기, 접이식 목재 기중기, 발파 장치, 접합줄, 폐기물 처리기, 13센티미터의 직경으로 300미터까지 파 들어갈 수 있는 조립식 시추봉까지 다 합해도 7마리 개가 끄는 썰매 3대면 충분히 운반할 수 있었다. 이는 대부분의 금속 부분을 특수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결과였다. 4대의 대형 도르니에 비행정(독일의 항공기 제작 기술자 도리니에Dornier가 발명한 모델로 3.2톤까지 화물을 탑재할 수 있었음―옮긴이)은 남극 고원 상공을 비행할 때 엄청난 고도에도 견딜 수 있도록 특수 고안됐다. 여기에 파버디 교수가 만든 연료 부동액과 급속 점화 장치까지 장착해서 거대한 빙벽 끝에 있는 탐사 기지에서 필요한 탐사 지점으로 이동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일단 탐사 지점에 도착한 후에는 개썰매를 타고 이동할 계획이었다.
우리는 남극에서 계절이 끝나기 전에―부득이한 경우에는 그보다 시간을 더 연장할 수 있지만―최대한 많은 지역을 탐사하고, 섀클턴과 아문센, 스콧 및 버드가 앞서 다녀간 로스 해(남극 대륙의 태평양 쪽 빅토리아 랜드와 메리버드 랜드 사이에 있는 큰 만―옮긴이) 남쪽 고원과 산맥 대부분을 포함할 예정이었다. 비행기로 이동하면서 캠프를 수시로 바꾸고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지점을 찾아다닐 수 있으므로 전례가 없는 엄청난 양의 광물을 확보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남극에서 발견된 양이 미미했던 선캄브리아기(캄브리아기 이전의 지질 시대로 약 46억 년 전부터 약 5억 7000만 년 전까지를 말하며, 시생대와 원생대로 나뉨―옮긴이)의 지층 표본에 거는 기대도 컸다. 얼음과 죽음뿐인 그 황량한 왕국에 살았던 초기 생물의 역사는 인류의 과거를 연구하는데 중대한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화석을 가능한 많이 채집하고 싶었다. 남극 대륙은 한때 온난한 기후뿐 아니라 열대 기후였으며, 풍부한 동식물이 생존했던 곳이었지만 현재는 이끼류와 해양 동물, 거미류, 북쪽 극지방에 살고 있는 펭귄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생물임은 일반적으로도 알려진 상식이다. 우리는 이런 정보를 좀 더 다양하고 정확하고 상세하게 확장하고 싶었다. 간단한 시추 작업 중에 화석층이 발견되면, 구멍을 폭파해 시추공의 반경을 늘린 다음, 적절한 크기와 조건에 따라 표본을 채취할 생각이었다.
지표층의 토양과 암반이 지닌 가능성에 따라 여러 깊이로 진행되는 시추 작업은 지표면을 노출시키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지역으로만 제한했다. 저층 위의 단단한 얼음층 두께가 1500미터에서 3000미터에 달하기 때문에 작업은 부득이 경사면이나 능선일 수밖에 없었다. 파버디 교수가 시추공으로 굵은 구리 전극봉을 넣고 휘발유 발전기로 전류를 보내 제한된 얼음층을 녹인다는 계획을 마련하긴 했지만, 단순히 빙하를 뚫겠다고 시추 장비를 낭비할 여력이 없었다. 우리가 시험적으로만 시도해본 이 계획을 내가 남극 탐사에서 돌아온 이후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곧 있을 스타크웨더-무어 탐사팀이 사용하겠다고 한 것이다.
우리가 《아컴 어드버타이저》 지와 AP 통신에 자주 무선 보고를 했고, 탐사 후엔 파버디 교수와 내가 논문을 발표하기도 해서 미스캐토닉 탐사팀에 대해서는 세간에 알려져 있다. 파버디 교수와 생물학과의 레이크 교수, 물리학과(기상학자이기도 한)의 애트우드 교수, 그리고 지질학과를 대표해서 명목상 지휘까지 맡은 나 이렇게 대학교수는 4명이었다. 여기에 16명의 보조 인력이 있었다. 7명은 미스캐토닉 대학의 대학원생들이었고, 9명은 숙련된 기술자였다. 이들 16명 중에서 12명이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고, 2명을 뺀 전원이 유능한 무선통신사였다. 파버디와 애트우드 그리고 나 외에도 8명이 나침반과 육분의로 방향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우리의 선박 2척―얼음에 견딜 수 있게 보강하고 보조 증기동력을 장착한 포경용 목선―에는 승무원들이 완벽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두세 군데의 특별기금 외에 너새니얼 더비 픽맨 재단이 재정 지원을 했다. 그래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진 않았어도 준비는 굉장히 철저했다. 썰매 개와 썰매, 탐사 장비, 야영 물품, 조립되지 않은 5대 분의 비행기 부품은 모두 보스턴으로 운반되어 거기서 우리 선박으로 실었다. 우리의 특별한 목적에 맞는 장비뿐 아니라 보급품과 식량, 운송수단, 야영장비에 이르기까지 최근에 매우 뛰어난 탐험가들이 보여준 많은 선례들을 참고해 완벽하게 준비했다. 이 선배 탐험가들의 이례적으로 많은 수와 명성 때문에 여러모로 규모가 꽤 됐던 우리 탐사팀은 세간의 주목을 그리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