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카디오 헌 괴담 단편선
그리스 출신의 라프카디오 헌은 훗날 일본으로 귀화한 작가(일본명은 고이즈미 야쿠모). 일찍이 일본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통찰을 보여주었다.
헌의 단편집 『괴담 Kwaidan: Stories and Studies of Strange Things』은 작가의 대표작이자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동명 영화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옴니버스 영화 「괴담」은 1965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이후 지금까지 빈번히 회자되고 있다. 영화는 4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헌의 괴담 단편선에는 영화 「괴담」의 원작이 되는 단편들을 추렸다. 영화의 원작으로 사용된 작품들은 『괴담』뿐 아니라 『그림자 Shadowings』, 『교토: Kotto: Being Japanese Curios, with Sundry Cobwebs』 총 3권의 단편집에서 뽑은 총 5편의 단편이다.
영화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흑발(검은 머리칼)’. 원작은 헌의 단편집 『그림자』에 수록된 「화해 The Reconciliation」와 「시체 올라타기 The Corpse-Rider」로 알려져 있다.
「화해」
보필하는 주군이 몰락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사무라이의 이야기다. 이 사무라이는 결혼을 통해서 난관을 타개하고 신분상승까지 노린다. 문제는 이미 결혼해서 아내가 있다는 것. 그러나 그는 착하고 헌신적인 아내를 냉정하게 버리고 계획대로 명문가의 딸과 재혼하여 든든한 사회적 입지를 다지는데도 성공한다. 그런데 영 행복하지 않고 자꾸 전처의 얼굴이 떠오른다. 영화의 에피소드는 이 단편의 서사를 충실하게 따른 편이다. 이 단편 「화해」가 ‘흑발’의 서사를 맡았다면, 또 다른 원작 단편 「시체 올라타기」는 보완적 효과에 가까운 것 같다.
「시체 올라타기」
라프카디오 헌의 단편 「시체 올라타기」는 앞서 소개한 「화해」에 이어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영화 「괴담」 첫 번째 에피소드 ‘흑발’의 원작이다.
에피소드 ‘흑발’은 헌의 두 단편을 원작으로 하는데, 「화해」는 전체적인 서사, 「시체 올라타기」는 죽은 여인의 원한과 검은 머리칼의 공포를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보완적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시체 올라타기」에서도 이혼이 발단이 되는데, 이혼 후에 여자는 남편에 대한 원한과 복수를 품고 죽는다. 누구도 수습하지 않은 여자의 시신은 집에 그대로 방치되고, 뒤늦게 나타난 남편은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음양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방법을 찾지 않으면 시체한테 발기발기 찢겨죽게 될 상황. 음양사가 내린 단 하나의 비법, “시체에 올라타라.”
「설녀 유키온나」
영화 『괴담』의 두 번째 에피소드는 ‘설녀’. 원작은 헌의 단편집 『괴담』에 수록된 「설녀 유키온나」다.
엄동설한에 숲으로 나무를 하러 간 두 나무꾼. 돌아오는 길에 거세진 눈보라를 피해 오두막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로 한다. 그런데 이 오두막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눈처럼 새하얀 여자. 아름답고 무섭다. 두 나무꾼 중에서 여자의 입김을 받은 늙은 나무꾼은 죽고, 나머지 ‘어리고 잘생긴’ 미노키치는 살아남는다. 단, 자기를 본 이야기를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조건이 달린다.
「귀 없는 호이치」
영화 「괴담」 세 번째 에피소드는 ‘귀 없는 호이치’. 원작은 라프카디오 헌의 단편집 『괴담』에 수록된 「귀 없는 호이치 The Story of Mimi-Nashi-Hoich」다. 두 번째 에피소드 원작인 「설녀 유키온나」와 마찬가지로 「귀 없는 호이치」도 일본의 널리 알려진 전설.
비파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평곡) 비파법사 호이치에 관한 이야기다. 맹인 호이치는 뛰어난 비파 연주와 평곡 ‘헤이케의 이야기(헤이케모노가타리)’에 능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헤이케의 이야기’는 일본 헤이안 시대 말 1185년 벌어진 단노우라 전투를 포함하는 헤이케 가문의 흥망성쇠가 그 내용. 어느 날 호이치는 자신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다는 사무라이를 따라 어느 지체 높은 다이묘(영주)와 귀인들의 모임에 불려간다. 그런데 앞을 보지 못하는 호이치가 불려간 곳은 실상 그가 생각하는 장소가 아니다. 호이치는 자신의 뛰어난 재능 때문에 망혼들에게 죽음을 맞게 될 위험에 처한 셈.
「찻잔 속」
영화 「괴담」 마지막 네 번째 에피소드는 ‘찻잔 속’. 원작은 헌의 단편집 『교토』에 수록된 「찻잔 속 In a Cup of Tea」이다.
1683년 주군의 행차를 수행하는 한 사무라이. 수행단이 잠시 쉬어갈 겸 들른 찻집에서 이 사무라이는 기이한 일을 겪는다. 자신의 찻잔 속에 어떤 얼굴이 자꾸 비치는 것. 겁이 났지만 그걸 숨기려고 호탕하게 차와 거기에 비친 얼굴까지 단숨에 마셔버린다. 그런데 이 찻잔에 비쳤던 얼굴이 사무라이를 찾아와 자신을 해했다고 항의하는데…… 사무라이는 유령을 삼킨 셈인데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