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밀라: 뱀파이어 걸작선
고딕 문학을 탐색해온 바톤핑크가 이번에 집중해서 다루는 주제는 뱀파이어. 지금까지 출간해온 뱀파이어 단편들의 일차 정리이자 '사이킥 뱀파이어'를 소개했던 시도의 연장선이다.
영화보다 백 년 정도 앞서 문학, 그 중에서도 소설에 투영된 뱀파이어 이야기는 『드라큘라Dracula』를 분기점으로 현재까지 꾸준히 창작되고 있다. 뱀파이어가 전통과 고전을 바탕으로 문학뿐 아니라 영화와 게임, 만화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 그에 대한 일차적인 해답을 문학 텍스트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드라큘라』에 이르기까지 남성 뱀파이어는 빠르게 캐릭터를 구축하고 흡혈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입지를 넓혀갔다. 반면 여성 뱀파이어는 상대적으로 확연히 눈에 띄지 않았을뿐이지 역시나 선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때로는 여성 뱀파이어들을 통해 작품마다 잠복된 전복의 메타포들은 고딕 소설의 장치와 맞물려 당대보다는 후대를 위한 해석의 상찬을 마련하기도 한다.
여성 뱀파이어로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강렬한 인상과 영향을 준 작품은 조셉 셰리든 르 파뉴의 「카르밀라Carmilla」일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뱀파이어 카르밀라와 화자인 로라의 관계에서 읽을 수 있는 레즈비어니즘(Lesbianism)에 초점이 맞춰지는 추세다. 동성애를 용납하지 않던 당시의 성 모럴에서 이 작품은 교묘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이끌어간다.
『드라큘라』보다 25년 앞서 출간된 「카르밀라」는 뱀파이어 소설에서 지배적이던 낭만주의적 특징에 변화를 가져온 작품이기도 하다. 허구적인 편집자를 내세운 프롤로그 도입과 뱀파이어에 대한 의학적이고 심리학적인 접근 방법을 통해, 소설 양식이 뱀파이어 이야기에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을 보여준다.
지은이 조셉 셰리든 르 파뉴(Joseph Thomas Sheridan Le Fanu)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으며 유령 이야기, 미스터리 소설, 뱀파이어 이야기의 작가로 유명하다. 기이하고 초자연적인 것들을 주로 다룬 그의 소설은 호러 장르의 초기 사례들로 손꼽힌다. 아일랜드의 오래된 위그노 가문 출생으로, 할머니 엘리스 셰리던 르파뉴Sheridan Le Fanu와 그녀의 남동생 리차드 브린슬리 셰리던Richard Brinsley Sheridan은 유명한 극작가였고, 사촌인 로다 브로튼Rhoda Broughton은 성공한 소설가였다.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의사 시험에 통과했으나, 의사 직업을 포기하고 언론계에 진출했다. 1840년《워든Warden》지와 《프로테스탄트 가디언Protestant Guardian》지를 인수해 직접 편집을 맡았고,《더블린 이브닝 메일Dublin Evening Mail》등 몇 개의 신문사 주식을 소유하여 언론인으로서 매우 길고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최초의 소설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인 『퍼셀 페이퍼스The Purcell Papers』는 대학 시절에 씌어졌는데, 훗날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뒤에야 세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1845년부터 1873년까지 열네 편의 소설을 썼으며, 그 중에 오늘날까지 읽혀지고 있는 『엉클 사일러스Uncle Silas』, 『교회 묘지 옆의 집The House by the Churchyard』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언론인이라는 직업 덕에 쉽게 다작의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퍼셀 페이퍼스』와 데뷔작 『유령과 접골사The Ghost and the Bonesette』등 다수의 작품들이 그의 소유였던《더블린 유니버시티 매거진Dublin University Magazine》에서 발표되었다. 뛰어난 뱀파이어 중편 「카르밀라Carmilla」를 비롯하여 대표적 단편「녹차Green Tea」, 「악마 디컨」등은 『유령 걸작선Best Ghost Stories』에 실려 있다.
옮긴이 미스터고딕 정진영
함께 기획하고 번역하는 팀이다. 미스터 고딕은 생업을 하며 틈틈이 준비해 온 원고들로 전자책을 만들고 있다. 고딕 호러와 러브크래프트를 좋아하지만, 때때로 현실과 일상이 더 공포스럽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보석 같은 작가와 작품을 만날 때 특히 기쁘다. 그런 기쁨을 출간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정진영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상상에서는 고딕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잿빛의 종말론적 색채를 좋아하나 현실에서는 하루하루 장밋빛 꿈을 꾸면서 살고 있다. 고전 문학 특히 장르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기획과 번역을 통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작품들도 소개하려고 노력 중이다. 스티븐 킹의 『그것』, 『러브크래프트 전집』, 『검은 수녀들』, 『잭 더 리퍼 연대기』, 『코난 도일 호러 걸작선』, 『죽이는 로맨스』, 『광기를 비추는 등대 라이트하우스』 등을 번역했다.
표지
카르밀라
프롤로그
제1장 유년의 공포
제2장 손님
제3장 과거를 주고받다
제4장 그녀의 습관, 산책
제5장 기막히게 닮은꼴
제6장 아주 이상한 고통
제7장 하강
제8장 수색
제9장 의사
제10장 가족의 죽음
제11장 사건의 내막
제12장 간곡한 부탁
제13장 나무꾼
제14장 만남
제15장 시련과 처단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