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브가의 바바라
「그리브가(家)의 바바라 Barbara of the House of Grebe」는 단편으로 발표되었다가 나중에 작품집 『귀부인들 A Group of Noble Dames』에 포함됐다. 언뜻 제목만 봐서는 귀부인들의 모임 같지만 실상은 골동품 덕후 아저씨들의 모임이다. 토마스 하디의 많은 작품들처럼 잉글랜드 남서부 웨식스가 배경. 그리고 역시나 이 웨식스에는 실제와 허구 지명이 혼용되면서 하디 특유의 가상공간들이 만들어진다.
웨식스 지역의 골동품 애호가들이 동호회 모임을 가졌다가 악천후로 인해 박물관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을 맞는다. 시간을 때울 겸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한명씩 얘기를 들려주기로 하는데 그 주제가 바로 “귀부인들”에 관한 것이다. 자연스레 액자 소설의 형태를 띠는 10편의 이야기 중에서 「그리브가의 바바라」는 두 번째로, 첫 번째 이야기를 들려준 역사가에 이어서 이번에는 늙은 의사가 이야기꾼으로 나선다.
이 단편은 일그러진 집착과 병적인 감수성의 앙상블이 빚어내는 시쳇말로 대환장 로맨스다.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남자와 결혼한 ‘그리브’ 남작가문의 바바라. 이런 바바라를 사랑보다는 쟁취와 전리품 개념으로 접근하는 냉혈한 업랜드타워스 백작. 열일 곱 바바라의 마음을 훔친 별 볼일 없는 집안의 윌로우스는 그야말로 “월드와이드 핸섬 가이”. 그냥, 완벽하게 잘생겼다. 즉흥적으로 결혼한 (그러나 얼굴이 완전히 망가지는 화재 사고를 당한 후 행적이 묘연한 윌로우스로 인해 과부 신세가 된) 바바라를 끝끝내 아내로 맞이하는 업랜드타워스 백작, 그는 이른 나이부터 권력의 단맛을 본 명문가의 권세가다. 그냥, 어딜 가나 사람들이 알아서 굽실거린다.
사랑하는 남자 윌로우스는 행방불명에 이어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사랑하지 않는 남자 업랜드타워스와 재혼한 바바라. 이탈리아 피사의 한 조각가가 만들어서 보관 중이었다는 전남편 윌로우스의 조각상이 우여곡절 끝에 한참 뒤에야 바바라에게 전달된다. 신을 빚어낸 듯한 (화재 사고를 당하기 전에 만든) 이 등신상 앞에서 사랑과 회한의 황홀경에 빠지는 바바라. 이런 아내를 불같은 질투 속에서 몰래 지켜보는 업랜드타워스 백작. 이제 이야기의 전개 양상은 T. S. 엘리어트가 이 작품에 대해 “오로지 병적인 감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쓴” 것 같다고 한 평이 과장이 아님을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