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소중한 지혜
퇴계 이황은 우리나라의 사상가 중 손에 꼽히는 인물로서 사람들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이 사람의 생각이나 가르침은 잘 알지 못한다. 여기서는 이황의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가르침보다 개인의 삶에 적응할 수 있는- 가정의 가훈으로 세워도 좋을- 몇몇 가르침을 정리하였다. 이 정리는 언제 누가 발행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퇴계 가훈>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진 퇴계 선생의 저작물을 풀어놓은 것이다
퇴계 이황은 도산 서당에서 성리학의 심성론을 크게 발전시킨 한국철학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의 자는 경호이며, 호는 지산 ·퇴계이다. 연산군 7년 11월 25일 경상북도 안동 도산에서 진사 이식의 여섯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퇴계의 아버지는 서당을 지어 교육을 해 보려던 뜻을 펴지 못한 채, 퇴계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퇴계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34세에 대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벼슬을 시작하여 끊임없이 학문을 연마하며 순탄한 관료 생활을 보내던 그는 종 3품인 성균관 대사성에 이른 43세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갈 뜻을 품게 된다.
이후 세 차례나 귀향과 소환을 반복하면서 고향에서 연구, 강의, 저술에 전념한 퇴계는 50세 이후에는 고향의 한적한 시냇가에 한서암과 계상서당 및 도산서당을 세우고, 그의 학덕을 사모하여 모여드는 문인들을 가르치며 성리학의 연구와 저술에 집중하였다. 권력에서 멀어진 후에도 조정에서는 계속하여 높은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거듭 사직 상소를 올려 받지 않았으며 마지못해 잠시 나갔다가도 곧 사퇴하여 귀향하기를 반복하며 학자의 길을 걸었다. 연구에 몰두하던 그의 나이 70세, 1570년 12월 8일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고봉 기대승과의 4단 7정에 관한 논쟁을 통하여 학문적 논쟁의 모범을 보여주고, 성리학의 심성론을 크게 발전시켰다. 저서로는 『계몽전의』, 『송계원명이학통론』, 『퇴계집』 등이 있다.
1. 집에 들어서는 효성을 다하고
2. 저녁에는 이부자리를 보아드리고
3. 효성은 한겨울 대밭에서 죽순이 돋아 오르게 한다
4. 외출할 때는 나감을 고하고
5. 어버이가 드시거든 그 즐기시는 바를 본다
6. 어버이의 아픔은 나의 아픔과 같다
7. 싸움질하여 몸을 상하면
8. 한 걸음 내딛는 사이에도 잊지 말고
9. 제사 그릇을 빌려 쓰지 말라
10. 깊은 밤에 다니지 말고 싸움판에 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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