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를 버리고 노자를 만날 때
지혜의 재발견, 늦기 전에 노자를 만나라
지식보다 깊은 지혜의 말들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과
참된 진리가 한 권에 담겨 있다!
무위무욕으로 인위적인 것을 거부하다!
현대인에게 쉴 ‘틈’을 주는 노자의 사상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 사회의 병폐가 뿌리 깊어질수록 동양 고전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정신적인 안정과 치유를 원하기 때문이다. 삶의 진리를 일깨우고 사색하게 하는 깊은 철학이 고전의 힘이다. 그리고 동양 고전은 서양의 고전과는 다른 ‘여백의 미’를 가졌다. 현대는 과잉이 결핍을 부르는 이상한 시대이다. 현대인은 너무 많이 바쁘고 사회는 너무 많은 정보와 지식들로 넘친다. 그리하여 숨 쉴 ‘틈’, 여백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리는 편리함이 늘어날수록 현대인의 조급증은 심해진다. 하지만 바쁘게 살아도 삶의 속도는 올라가기만 할 뿐 쉴 틈은 주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채우기에 급급한 현대인에게 노자의 세계관, 자연관은 비움을 강조한다. 순리를 따르라고 말하고 억지로 행하는 것들, 인위적인 것들을 부정한다. 노자가 말하는 참된 것은 텅 비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노자는 인간성을 속박하는 시비(是非)나 미추(美醜) 등의 대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원초적인 본성을 찾아야 하고 자연의 도에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노자의 사상은 실질적으로 적용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여유를 잃은 현대인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노자』의 핵심 구절을 다룸으로써 노자의 도에 보다 가까이 가고자 했다. 또한 노자에 영향을 받은 공자를 비롯한 여러 사상가들의 사상을 들여다볼 수 있어 노자는 물론 다른 사상가들의 철학도 알 수 있다.
젊어서는 유위의 지식을 불혹에는 무위의 지혜를
젊은 시절에는 이루고 싶은 꿈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그것들은 시간에 마모되면서 완성된 형태를 갖춘다. 꿈을 이뤘든 이루지 못 했든 아직 그 중간에 있든 나이를 먹으면 성숙한 자세가 요구된다. 마흔을 불혹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유혹을 받아도 혹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나온 삶을 천천히 음미하고 앞으로의 삶을 흔들림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젊어서 쌓은 ‘지식’들을 ‘지혜’로 바꿔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젊어서는 유위의 지식을, 불혹에는 무위의 지혜가 필요하다.
『노자』에서 말하는 무위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내려놓고 비우도록 강조한다. 쌓은 욕망과 지식을 두고 한 걸음씩 가벼워지게 한다. 숨 가쁘게 달려온 당신에게 평안을 주고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기를 수 있는 힘이 무위에 있다.
[책 속 한 문장]
공자는 노자와 헤어지고 나서 제자들에게 말했다.
새는 잘 날아다니고,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치며,
들짐승은 잘 달린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달리는 들짐승은 그물을 쳐서 잡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싯대를 드리워서 낚으며,
날아다니는 새는 주살을 쏘아야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나 용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른다고 하니
나로서는 용의 실체를 알 수가 없다.
나는 오늘 노자를 만났는데,
마치 용과 같아 전혀 잡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기』「노장신한열전」
공자는 노자를 매우 존경하여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용처럼 실체를 알 수 없고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공자가 노자를 용이라고 한 일화는『장자』의「천운」에도 나온다.
-공자에게 가르침을 준 노자
노자에 따르면 도는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적이며 상대적이지 않고 절대적이다. 그가 말하는 도는“ 태곳적부터 자연적으로 존재하면서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는 절대적이고 현묘 불가사의한 영원불멸의 허무虛無”이다. 노자가 바라는 세상은 생명과 자연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만난다. 무위자연의 도는 흐르는 물 같은 과정에서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고 인위적이고 파괴의 힘을 배척한다. 노자의 가르침은 생명 존중과 일맥상통한다. 생활에 있어서도 극단적이고 과격한 일 대신 사치를 버리고 검소함을 취하도록 주장한다. 노자는 “인간에게 타오르는 탐욕의 불을 끄고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면 장차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노자와 무위자연
노자는 모순된 관계에 있는 쌍방이 상호 의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립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배척하거나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세상의 모두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알아보는 것은
추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착한 것을 착하다고 알아보는 것은
착하지 않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有와 무無는 서로를 낳고,
어려움과 쉬움도 서로의 관계를 성립시켜 주며,
긴 것과 짧은 것도 서로를 이뤄 주고,
높은 것과 낮은 것도 서로를 포함하며,
노래와 소리도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도 서로 따른다.
『노자』 제2장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것은 추함이 존재하기 때문